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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ronomy

오르트 구름과 혜성의 구성물질

사용자 글래스애니멀 2019. 10. 4. 16:01

거대한 구름이 태양계를 둘러싸고 있다

1950년 독일 천문학자 얀 오프트는 에스토니아의 천체 물리학자 에른스트 외픽이 주장한 이론을 되살려서 태양계의 끝에 혜성의 발원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두 가지 주된 종류의 혜성이 내행성계, 즉 4개의 바위투성이 행성으로 구성된 우주 영역을 방문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단주기 혜성은 200년 이내의 주기로 방문하여 행성들이 위치한 평면에서 궤도를 돈다. 장주기 혜성은 200년 보다 긴 주기로 방문하여 모든 방향과 각도에서 태양계의 평면을 향하는 궤도로 돈다. 어떤 종류의 혜성이든 그 기원은 추측에 맡겨졌다.

 

장주기혜성

오르트의 생각은 장주기 혜성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내행성계를 방문하는 혜성은 언제가는 결국 태양이나 행성과 충돌하거나 행성 근처를 지나다가 궤도라 교란되면서 태양계에서 튕겨나갈 것이다. 이 말은 혜성이 태양게가 형성된 이래로 계속 현재의 궤도로만 돌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르트는 내행성계를 통과하는 장중기 혜성이 단지 태양주위를 선회하는 모든 혜성의 작은 부분집한일 분이라고 주장했다. 지구에서 보이는 혜성은 아마도 지나가는 별에 이끌려 멀리 있는 혜성의 발원지에서 취어나와 태양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긴 타원형의 궤도를 선회하라는 것이다.

 

구형의 구름 

오르트는 수많은 장주기 혜성의 궤도와 그들이 도달하는 태양에서 가장 먼거리른 검토한 결과 장주기

혜성의 집합소가 태양에서 최대 7.5조~30조 킬로미터에 이르는 껍질과 같이 둘러싼 구 모양의 영역이라

고 판단했다. 수십억개 또는 수조개의 혜성이 모여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영역은 현재 오르트구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후로 단주기 혜성은 아마도 태양에 훨씬 더 가가운 원반 같은 영역, 즐 카이퍼 대에서 생겨나리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혜성은 더러운 눈뭉치다.

 

혜성의 등장은 장관을 이루는 사건으로, 가장 밝은 햬성은 심지어 대낮에 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 천문학자 프레트 휘플은 이런 화면한 별 방문객이 실은 지독히 어두운 천체임을 증명했다.

1950년에 휘플은 혜성의 핵(지구에서도 보이는 밝은 기체의 꼬리와는 정반대로 초기 태양계의 잔해이 본체)이 유성 물질과 휘발성 얼음이 거칠게 혼합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얼음은 주로 얼어버린 물에 일산화탄소,이산화탄수, 메탄, 암모니아 등의 동결된 기체가 섞여있었고, 나머지는 암석과 먼지였다. 표면에는 원유와 비슷한 타르질의 유기화합물이 검은 껍질로 둘러싸고 있었다. 혜성의 핵은 태양계에서 가장 어두운 천체에 속한다. 핵이 도달하는 빛의 4퍼센트만이 반사되기 때문이다. 포장도로에 새로 깐 검은색 타맥도 이에 비하면 2배의 빛을 반사한다. 

휘플의"얼음 복합체"이론은 혜성이 태양을 지나가는 동안 어떻게 반복적으로 증기 꼬리를 내보내는 지를 설명해 준다. 이론은 수용되었지만, 시선을 더 끄는 '더러운 눈덩이'라는 명칭이 붙어있다.(훗날 혜성이 얼음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발결이 나오자 얼음 먼지덩어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휘플은 그의 주장을 확인받기 위해 1986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해에 비로소  조토호가 핼 혜성 옆으로 접근하여 보통의 밝은 코마에 가려져있는 어두운 핵의 접금 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운석은 충격을 받으면 증발할 수 있다.

 

미국 지질할자 유진 슈메이커는 행성할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그는 지질할 기법을 이용하여

외계 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의 천체지잘학의 창시자로 그 공을 인정 받아 유해를 달로 보냈다.

 슈메이커의 초기 연구는 애리조나 사막의 운석 충돌구 하는 크레이터에 전적으로 의지했다.

근처 캐년 디아블로 초기 유럽 정착민들은 이것이 고대 화산의 분출구라 믿었다. 1880년대에 그곳을 지나가던 철도기사들은 사막일대에 흩어져 있는 철이 풍부한 암석을 대량으로 발견했다. 이것은 크레이터가 금속성 운석의 충돌로 생격났다는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구덩이 주면에 

쌓인 잔해의 양이 크레이터 자체의 크기와 거의 일치한다는 이유로 일축되었다.

운석이 없었다면 운석 충돌구일 수 도 없다는 것이다.

 

1903년에 광산기술자인 대니얼 배린저는 운석공 바닥에 묻힌 철질 운석을 찾았지만 실로 끝나고 말았다.

1960년에 와서야 슈메이커가 증거를 발견했다. 크레이터에는 과거에 핵폭탄 시험장에서나 보이던 실리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광물은 화산 활동으로 자연히 생길 수 없고, 오직 시속60,000길로미터로 이동하는 운석의 에너지로만 생성될 수 있었다. 이 에너지가 운석을 증말시켰고, 그래서 운석이 사라인 이유가 설명되었다. 슈메이커는 거대 운석이 지구와 충동했다는 최초의 증거를 제시하여, 외계 천체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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