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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ronomy

항성간의 교신 방법

by 글래스애니멀 2019. 10. 9.

1959년 9월 과학저널 네이터에는 짧지만 영향력이 막대한 논문이 실렸다. 주세페 코코니와 필립 모리슨의

'항성 간 교신 방법을 찾아서' 였다.  이글은 전혀 새로운 과학 연구 분야를 소개했다. 외계 생명체의 속성과 지구 밖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한 연구였다. 과학 역사상 최초로 ‘외계인 사냥’이 진지한 연구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때마침 1957년에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추적하기 위해 영국 조드럴뱅크(Jodrell Bank) 천문대에서 76미터 짜리 전파망원경을 완성하면서 새로운 가능성르 열렸다. 이런 종류의 망원경은 강력한 송신기만 장착되면  그에

상응하는 기술을 보유한 어떤 문명과도 먼 항성간 거 리를 거쳐 교신할 수 있었다. 코코니와 모리슨은 논문에서

항성의 궤도를 도는 어떤 행성에는 이미 선진 문명이 존재하여 외계와의 교신을 시도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마이크로파 스펙트럼에서 신호를 찾으며 가능성이 있는 주파수와 지적 생명체를 찾아 나설 잠재적인

위치를 식별해내려 했다.

 

우주에 다른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외계와 교신하려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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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 대역에서 수소 원자가 방출하는 21센티미터 파장은 전 우주에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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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파 망원경 덕분에 전파 스펙트럼 메시지를 찾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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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장으로 항성 간의 교신을 탐사하러 나서자.

 

찾아볼 지점
코코니와 모리슨은 수소 원자의 복사선 방출선(특징적인 파장)인 ‘21 센티미터 수소 선’에 초점을 맞주었다. 고주파(마이크로파) 대역에서 1420MHz 복사선은 수소 원자안에서 양자와 전자가 에너지 상태를 변경 할 때 방출된다. 1951년에

이 발견에 힘입어 전파를 이용하여 은하 전반의 수소 분포에 관한 지도가 만들어졌고,전파는 가시광선과 달리 

먼지구름에도 차단되지 않았다. 코코니와 모리슨은 21센티미터 수소선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모든 지적 문명에도
알려져 있을 것이고, 따라서 이 주파수대부근의 신호 전송을 찾는 데서 연구가 출 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전송 형식,즉 펄스폭변조 파장이 FM 전파신호와 마찬가지로 메이데이(Mayday,국제 조난 무선 신호) 발호처럼 계속 반복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 변조 파장은 일정 진폭을 유지하면서도 규칙적으로 고주파의 스를 보낼 터 였다. 신호는 어쩌면 수년의 오랜 기간에 걸쳐 주기를 이룰 수도 있었다.

미래의 연구
코니와 모리스의 아이디어는 수십 년 간 외계지적생명체탐사(SLTI) 계획을 지배했다. 이들 논문의 추천에 따라 

프랭크 드레이크(Frank Drake)는 선구적인 실험 프로젝트 오즈마 계획을 통해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그린뱅크 천문대(Green Bank observatory)에서 태양과 닮은 가까운 항성인 고래자리 타우와 에리다누스자리 입실론을 타깃으로 삼아 

21센티미터 수소선 부근을 스캔했다. 안타깝게도 이 프로젝트는 어떤 신빙성 있는 후보 항성도 찾아내지 못했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제한적인 연구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신 SETI 연구자들은 우리를 위해 

의도되지 않고 누출된 신호로서 고도 문명의 화학적 또는 기온적인 특징을 찾거나 레이저 또는 중성미자를 이용한 새로운 교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주세페 코코니와 필립 모리슨

주세페 코코니는 1914년에 이탈리아 코모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그는 코넬대학에 들어갔다. 코코니는 아내 반나와 함께 연구하여 우주선(지구 외부로 부터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지구상에 날아오는 복사선)이 은하계 안팎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훗날 그는 제너바의 유럽공동원자핵연구서의 연구 책임자가 되었다.

필립 모리슨은 캘리포니아 대학에 진학하여 오펜하이머 밑에서 공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최조의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고, 최초의 원자 폭탄 트리니티를 핵심험 장소로 옮기는 동안 폭탁의 코어를 차에 싣고간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훗날 강경한 반행 운동가가 되었으며, 과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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